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몬 드 보부아르 (문단 편집) === 미성년 제자와의 동성애 === 보부아르 사후에 공개된 일기와 편지에서 보부아르가 여러 명의 제자들과 동성애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보부아르, 여성의 탄생》 p.28] 보부아르는 1930년대 말에서 1940년대 초, 철학교사를 하던 시기에까지 젊은 여성 3명과 육체 관계를 맺었는데, 이들은 모두 보부아르의 제자였다. 어떤 경우에는 사르트르도 나중에 이 여자들과 육체 관계를 맺었다. 이 뉴스가 보도되자 보부아르가 '''자기보다 훨씬 어린 여성들을 꼬드겨 불평등한 권력 관계 속에서 성관계를 맺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첫번째 관계는 러시아 출신 올가 코사키에비치(당시 18세)였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철학도를 꿈꾸던 학생인 올가에게 개인교습을 해준다는 명목으로 '''돈을 써서''' 방을 얻어주었다. 곧 보부아르는 그 방에서 올가와 성관계를 맺었다. 올가는 훗날 인터뷰에서 "뭐가 어떻든 간에 나는 그들의 관심을 누린다는 특혜에 완전히 흥분해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했다"고 회상하면서, 그들의 권위에 이끌려 그들이 원하는 대로 휘둘렸다고 후회했다. 두번째 관계는 폴란드 출신 수험생이었던 비앙카 비넨펠트(당시 17세)였다. 보부아르는 일기에서 비앙카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육체적 쾌락이 "도착적"이라고 말했으며, 자신이 비앙카의 육체를 "이용하고" "아무 애정 없이" 관능을 즐겼다고 썼다. 비앙카는 훗날 인터뷰에서 '''불평등한 권력 관계 속에서 성관계를 맺었다'''고 보부아르를 비난했으며, 보부아르를 "여제자들 중에서 잘 무르익은 젊은 육체를" 선별하여 "자기가 먼저 맛보고 사르트르에게 넘기는" 포식자로 말하였다. 세번째 관계는 이혼가정의 '''가난한''' 나탈리 소로킨(당시 18세)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을 소르본 대학에 보낼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공부보다 취직을 권했지만, '''보부아르가 등록금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결국 그녀와도 성관계를 맺는데, 심지어 이 사실을 사르트르에게 편지로 보고했다.[* 물론 서로 속이는 것이 없어야 한다는 계약관계에 따른 것이긴 하다.] 그 글의 일부가 이렇다. "포옹이 다시 시작되었고 호응이 잘되었어요. 올가와 할 때랑은 확실히 달랐어요. 난 그녀의 몸을 좋아해요." 이후 나탈리의 어머니는 보부아르를 '미성년자 풍기 문란 선동'으로 정부에 고소했고, 보부아르는 교사 자격직을 박탈당했다.[* 케이트 커크패트릭 『보부아르, 여성의 탄생』 번역 이세진, 교양인, 2021] 물론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프랑스에 미성년법이 아직 제정되기 전이어서 보부아르가 불법을 저지른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가 명확하게 15세 미만과의 성관계를 범죄화한 것은 2021년이나 되어서였다.[[https://www.politico.eu/article/france-sets-age-of-consent-at-15/|#]][* 이전까지는 폭력, 강압이 있을 경우에만 처벌] 2023년 기준으로 프랑스에서 성인과 15세 이상과의 성관계는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도 자유로운 상호 동의하에 이루어 지는 관계가 불법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공직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업무와 관련되어 불평등한 권력 관계 속에 있는 미성년 대상과 관계를 맺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당시에 '''공직자의 그러한 행동'''은 법으로 제지받는 행동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실제로 이 사건으로 인해 보부아르는 교사직을 박탈당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